스포일러 주의. 영알못 주의. 기독교알못 주의.
아끼고 아껴서 볼 예정이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 중 하나인 [박쥐]를 드디어 넷플릭스에서 꺼냈다. 이 영화를 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만 명작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고 박찬욱 스스로가 가장 잘 만든 영화라고 말해서 그런지 왠지 제대로 각 잡고 앉아서 봐야할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본 소감은... 정말 이게 박찬욱 최고의 영화인가?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난 후에 처음에 떠오른 감상은 “생각보다 노잼이네" 였다. 가장 마지막으로 봤던 박찬욱의 영화가 [아가씨]였는데 감독의 특징과 대중성을 어느 정도 적절하게 잘 섞어서 그런지 지루하지 않고 꽤 재밌게 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박쥐]는 [아가씨]를 봤을 때처럼 아 재밌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영화를 본 후 왓챠에 들어가 예상 별점을 확인하면서 역시 왓챠는 나의 취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 생각하면서 3.5점을 주고, 방구석 1열 [박쥐] 편을 보다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이상하게 이 영화를 계속해서 곱씹게 되었다.
영화 속 장면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박찬욱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최고로 로맨틱하다고 손꼽을 수 있을 신발 장면이라던가 강 위의 배에서 얘기를 나누던 장면이라던가... 분명히 처음에는 노잼이라 생각했던 영화가 어째서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인가.
가장 고결한 위치에서 사람들을 위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던 신부인 상현은 바이러스의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는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그 곳에서 연구하는 바이러스는 엠마누엘 바이러스였다. 상현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음에 이르렀지만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아 흡혈귀로 소생하게 된다.
엠마누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라는 의미다. 그리고 엠마누엘 바이러스는 줄여서 EV, 이브라고도 불린다.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하는 “엠마누엘”과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이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을 타락하게 만든 원죄와 같은 이브, 바이러스의 이름에 두 가지의 상반된 의미가 공존한다.
상현이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바이러스를 통해 흡혈귀라는 유혹을 맞닥뜨린 상황이 일종의 시험으로 보였다. 신부인 상현에게 내린 신의 시험. 억눌러왔던 욕구와 욕망들을 더이상 절제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시험. 상현은 이를 견뎌내기 위해 자해도 하고 노력하지만 그의 노력은 태주로 인하여 얼마 안 가 무너지게 된다. 신실한 신부였지만 나약한 인간, 아담이기도 했던 상현은 자신의 욕망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허물어진다.
신의 시험과 유혹에 무너진 아담이 상현이라면 태주는 상현의 욕망 그 자체였다. 상현이 처음으로 여자를 알게 한 존재였고,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고, 처음으로 살인을 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상현의 모든 행동의 이유에는 태주가 있었다. 상현은 태주로 인하여 점점 타락하게 된다.
태주의 남편이자 상현의 친구인 강우는 태주가 없애버리고 싶은 존재였고 결국 상현이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다. 강우는 태주라는 욕망을 붙잡고 있는 인간의 나약함과 순수함이다.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고, 태주를 옥죄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어떤 방향으로 튈 지 모르는 들끓는 욕망을 제어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상현이 태주의 거짓말을 듣고 강우를 죽이고 태주를 선택하는 장면은 곧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에게 남아있던 인간성을 포기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놓아버린 순수함은 이후 상현과 태주에게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돌아오게 된다.
태주의 거짓말,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상현은 분노하면서 태주를 살해한다. 그러나 죽은 태주의 피를 마시며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피를 주면서 태주를 되살린다. 아담이 자신의 뼈를 내주어 이브를 탄생시켰던 것처럼 상현은 피를 통해 자신의 손으로 태주를 흡혈귀로 새롭게 탄생시킨다.
상현은 태주를 되살린 이후 잠시 동안은 행복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덕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태주의 행동에 괴로워한다. 결국 마지막에 상현은 태주를 끌어안고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지옥에서 만나자는 말과 함께.
영화는 인간이 욕망에 잠식되어 타락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욕망을 맞닥뜨리며 고민하고 저울질하고 선택의 기로에 빠진다. 상현은 욕망을 선택했고, 자신의 것을 모두 포기할 정도로 욕망에 충실했으며, 결국 자신이 선택한 욕망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그것과 함께 지옥에 가기로 선택한다. 신의 시험이었을지도 모를 유혹 앞에서 상현의 마지막은 죽음으로 끝났지만 그가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태주를 포기하고 끝까지 고결한 신부로 남아 신도들에게 현신한 예수라고 불리는 삶을 선택했더라면 행복했을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신부와 흡혈귀라는 소재 탓인지 종교적 모티브가 많이 떠올라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적기는 했는데... 결국 오타쿠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 영화가 자꾸 떠오른 이유 중 하나는 역시 하균신의 얼굴이었다. 분량도 적어서 얼마 나오지도 않는데 나올 때마다 36살의 시나균이 너무 이뻐서... 30대 중반에 저 얼굴은 반칙 아니냐고.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 캐릭터로 나오지만 그 부분이 씹덕의 포인트를 건드렸다.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변태력(?)으로 아름다운 미모를 담아준 것에 감사하며 오랜만에 [복수는 나의 것] 재탕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