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스포일러 주의
[비밀의 숲] 시즌 2가 끝나는 걸 보고 바로 시즌 1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재밌다고 꼭 보라고 추천을 많이 받긴 했지만 완결이 안 난 드라마를 본방으로 달렸을 때 결말까지 다 본 전적이 거의 없어서 - 화이트 크리스마스, 학교2013, 시그널을 제외하면 국드 중엔 없다 - 시즌 2가 끝날 때까지 존버했다. 근래에 나온 국드 중에서는 제일 가는 퀄리티고, 국드는 [비밀의 숲] 전후로 나뉜다는 극찬까지 받았길래 엄청난 기대를 갖고 시작했다. 그리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은 적어도 이 드라마에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진짜 개쩔었던 장면. 모두 고개를 숙인 가운데 황시목 혼자 서있는 것까지 완벽하다.
막상 자세한 이야기를 적으려고 하니 어렵다. 마지막 화까지 다 보고 초반 부분을 잠깐 다시 봤는데, 모든 전말을 알고 보니 새로운 것들이 다시 보였다. 처음 볼 때는 사건을 수사하는 황시목의 입장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진범이 누굴까에 초점을 맞추면서 감상했는데, 진범의 정체를 알게 된 상태에서 다시 본 비밀의 숲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설계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인 진범의 치밀함. 그리고 황시목과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들이 모두 허투루 흘려보낼 만한 게 아닌, 뼈가 있는 말이었다.
이창준은 황시목을 처음부터 이 모든 일을 맡길 적임자로 점찍어놓고, 황시목과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렇지만 마지막 화에서 황시목이 이야기 했듯, 이창준을 미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원하지 않았어도 어쨌든 수많은 비리에 가담한 건 사실이었고, 윤 과장에게 살인을 지시한 건 부정할 수 없는 범죄였으니까. 그래도 이창준이라는 캐릭터를 싫어하긴 어렵다. 특히 부인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었다는 사실이 정말 발리는 포인트다. 이연재를 끌어안고 당신 정말 반짝반짝 빛났다고 말하는데... 이 시대의 진정한 로맨티스트였다. 일반적으로 드라마, 영화와 같은 영상 매체에서는 비리를 저지르는 인물이 권력을 얻기 위해 재벌가와 결혼을 하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자신이 힘들 때 곁을 지켜준 여자/남자친구를 버리고 부잣집 자식과 결혼하는 악역들이 일일연속극, 막장드라마에서는 빼놓지 않고 꼭 나온다. [비밀의 숲] 초중반에서도 이창준이 권력을 위해 재벌집 딸과 결혼을 한 것처럼 묘사하지만, 그런 클리셰를 비틀었다고도 볼 수 있다. 오히려 재벌이라는 빽을 얻어서 손해본 게 있었다는 대사가 직접적으로 나왔으니까. 그런 점들이 모여 이창준이라는 사람을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로 완성시킨 것 같다.

그리고 이창준 본체 배우도 피지컬이 너무 좋아서... 아저씨가 이렇게 멋있으면 어떡합니까.
[비밀의 숲]에서 가장 입체적이면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캐릭터가 이창준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난 ‘황시목’이라는 캐릭터가 제일 좋았다. 인간의 감정을 못 느낀다는 설정이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황시목 본체 배우가 연기로 그 설정을 잘 살려줬다. 그리고 ‘외롭다’는 감정을 알 리가 없지만, 혼자서 일을 하던 게 당연하던 캐릭터가 사건을 파헤치고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서 감정을 배우게 되는 과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난 원래 드라마 보면서 헤테로 커플에 잘 안 꽂히는데 비밀의 숲은 헤테로 맛집이었다. 내가 진짜 [시그널] 볼 때도 헤테로는 안 팠는데 비밀의 숲에서 헤테로를 파게 되다니… 영검사와의 텐션이 쩔긴 했지만 유일하게 한여진 앞에서만 미소를 짓는 부분이 나의 덕심을 제대로 자극했다. 그리고 그림 그려준 건 왜 다 차곡 차곡 모아놓고, 웃으니 예쁘다는 얘기에 거울 앞에서 미소 짓는 걸 연습하는 건데… 대체 왜… 이게 사랑이지, 사랑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랑이 아니라고? 그럼 난 황시목 검사를 고소할 거다. 덕후의 마음을 기만한 죄로.

진짜 붙어있기만 해도 잘 어울리는 거 솔직히 반칙이다. 이건 두 사람 결혼 안 하면 덕후 기만죄로 ㄹㅇ 고소해야됨
서동재는 솔직히 내가 진짜로 싫어하는 유형의 캐릭터였다. 양쪽 진영을 넘나들며 본인의 살 길을 찾아내려 발버둥치는 박쥐 같은 인물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가. 마지막에 황시목 손 붙잡고 변할 거라고 하더니 얼굴 싹 바뀌는 것도 그렇고. 시즌 1을 다 본 후에도 영 별로였는데, 시즌 2를 좀 보고 나니 서동재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납득이 됐다. 그리고 여태까지의 행적을 이해하니 잘생겼다고 생각만 했던 얼굴이 다시 보이게 되고… 생각해보니 선배랑 후배인데, 선배는 못 나가고 후배는 잘 나가는 미친 조합이고… 그리고 황시목 신입 시절 직속 선배였고… 그렇게 나는 호게모이를 또 퍼먹게 되고… 하지만 검색을 해보니 내가 또 마이너 주식을 샀다는 걸 알고 오열했다.

투샷 존나 개쩐다. 여러분 동재시목 떡상합니다. 모두 사세요. 안 사면 안 됩니다.
리뷰랍시고 썼는데 절반은 캐릭터 핥는 글만 쓴 것 같다. 할 말은 더 많지만 스토리보단 캐릭터에 대한 얘기가 더 많을 거 같아서 나중에 에피소드 별로 앓는 글을 따로 써야겠다. 다시 보게 되면 새로운 장면들이 보이겠지. 한동안은 비밀의 숲 덕질하느라 정신 못 차릴 거 같다.

사랑합니다 황시목 검사님. 근데 사랑하는 만큼 존나 굴리고 싶.. 아.. 아닙니다. 잡아가지 마세요. 이 글은 우리 집 고양이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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