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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s

winter의 자몽쥬스

 

 

    주말 동안 오랜만에 웹 소설을 읽었다. 패드나 핸드폰으로 읽으면 눈이 아파서 웹 소설은 잘 안 읽는 편인데, 오랜만에 머리 비우고 볼 수 있는 가벼운 소설들을 보고 싶어서 검색을 통해 BL 소설 세 작품을 엄선했다. 하나는 제목만 들어서는 대체 무슨 내용인지 감도 안 잡히는 중국 BL 소설 [인사반파자구계통], 두 번째는 스포츠 물에, 그것도 야구라면 환장하는 데 내용도 짧아서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고른 [와일드 피치], 마지막은 롤 프로게이머 얘기를 다룬 [winter의 자몽쥬스]였다.

 

두 작품은 기회가 되면 다음 기회에... 특히 [인사반파자구계통]은 시스템 창이 등장하는 소설은 기피하는데 꽤 재밌었다.


    [winter의 자몽쥬스]. 제목만 봤을 때 대체 이게 뭐람…? 싶었는데 프로게이머를 다룬 소설이라니. 사실 제목이 좀 별로여서 별 기대를 안 하고 읽었는데 대 반전이었다. BL 소설을 읽을 때 씬이 많고 주인공끼리 꽁냥거리는 걸 보는 것보단 로맨스는 그저 양념인 수준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확실히 로맨스보다는 게임에 비중이 컸다. 특히 주인수인 한초롱이 자신의 과거를 극복하고 팀에 적응하면서 이전의 기량을 십분 발휘할 때마다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저절로 흐뭇해졌다. 실제 LCK의 흐름과 유사하게 따라가면서 경기 스케쥴을 충분히 묘사하는데, 경기나 특정 이벤트가 발생할 때마다 커뮤니티나 채팅 반응을 보여주는 게 더 현실감을 높였다. 작가님이 롤판을 꽤 오랫동안 깊게 덕질한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벤, 트*치, *튜브, *씨 등 웬만한 커뮤와 스트리밍 사이트의 실시간 상황을 그대로 옮겨온 묘사가 그저 놀라웠다. 이건 진짜 웬만한 덕질 짬바로는 안 나오는 수준인데. 선수들의 몇몇 행동이나 이벤트에서는 LCK 밈이 떠오르기도 했다. 

    nn년간 여러 게임을 즐겼지만 애정을 갖고 한 온라인 게임, 그리고 해당 게임의 이스포츠까지 챙겨 보면서 응원한 건 롤과 오버워치 뿐이다. 그 중에서도 오버워치는 블자의 개삽질 및 없뎃으로 망겜 소리를 듣기 시작한 때부터 접은 지 좀 됐지만, 한동안 미쳐서 이스포츠 경기도 모두 챙겨보고 특정 팀도 열렬하게 응원했었다. 그래서 그런가. HS의 선수들이 서로 장난도 치고, 싸우기도 하지만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거나 슈퍼 플레이를 보여주는 장면을 볼 때마다 예전에 응원하던 팀이 생각났다. 작품에서 다루는 게임 장르는 완전히 다르지만 승패 결과에 따라 울고 웃던 그때 그 선수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우승컵 들고 울먹이면서 소감을 얘기하던 나의 구 최애… 

 

ㅇㅇㅍㅅ... ㄹㄴㅌㅎㅇ... ㄱ나니...? (아련)


    한성 게이밍이 실제로 존재하는 팀이었으면 아마 내 최애 팀이었을 거고 (여태까지 나는 스포츠 덕질을 시작하면 그 시점에서 제일 잘나가는 팀을 최애로 삼았다) 그 중에서도 Master 최정현이 최애 선수였을 것이다. 여러모로 모티브를 ㅌㅇ의 ㅍㅇㅋ에서 가져온 것 같고, (그래서 현 최애는 우리ㅎㅕㄱ이다… 아직도 나한테는 세최미라고… 흑흑) 이름도 비슷하니까. 잘 생긴 얼굴도 한 몫 하겠지만 우선 프로는 실력이 좋으면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슈퍼 플레이를 보고 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차애는 아마 서지호 아니면 한용호. 서지호는 내가 좋아하는 포지션이 원딜 / 서포터 바텀라인이기도 하고, 한용호는 최정현과의 미친 케미 때문에 차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초롱아 미안해… 근데 나는 짜감독님과 너의 케미가 더 오지는 거 같아. 아, 이건 최정현한테 미안해해야 되는 부분인가?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류성현의 으른미가 넘친다. 최정현이 견제할 만큼. 얼굴도 잘 생겨, 능력도 쩔고 성격도 좋아, 단 하나 부족한 건 여자친구일 뿐인 짜감독님. 게다가 초롱이한테 만큼은 엄하게 구는 것 같으면서도 늘 챙겨주고 부드럽게 대하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땐 연륜과 경험에서 최정현이 밀릴 것 같지만 주인공은 최정현이니까. 그래도 작가님이 류감독을 섭섭섭공으로 점찍어둔 것 같으니 한번 기대해 본다. 이 주식 떡상은 바라진 않지만 완전한 휴지 조각만 되지 않았으면…

    글을 열심히 쓰고 나니 책 얘기 보다는 예전 덕질 얘기만 구구절절 한 거 같은데… 어쨌든 롤을 좋아하고, 이스포츠 문화를 좋아하고, 그런 소재를 다룬 BL을 읽고 싶은데 휘몰아치는 로맨스와 빠릿빠릿한 전개 보다는 좀 느리더라도 세세한 묘사와 현장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강력하게 권할 수 있는 작품이다. 현재 이 작품의 유일한 단점은 완결이 안 났다는 것 뿐이다. 1부는 끝났는데 2부는 연재중이라… 2부 최근화까지 다 봤는데 존버하다가 완결이 났을 때 읽을 걸 싶었지만 완결나면 다시 정주행하면 되니까. 그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야겠다.

 


 

[전체/여름매미: 그러고보니 초롱이 부계가 윈터캐롤이었는데ㅋㅋㅋ]
[전체/봄봄봄봄: 나도 나중에 생각나더라ㅋㅋㅋ]
[전체/winter아이: 하하하;;;]
[전체/이구역진성탑러: 초롱아 기억나니?]
[전체/이구역진성탑러: 우리 예전에.... 벚꽃이 피던 날에..]
[전체/이구역진성탑러: 솔랭에서 즐거운 시간 보냈었는데]
[전체/봄봄봄봄: 용호형 또 이상한 각 잡는다.]
[전체/이구역진성탑러: 나는 블루팀 너는 레드팀이었던 그날]
[전체/이구역진성탑러: 네가 나에게 패배를 선사했던]
[전체/이구역진성탑러: 그 게임을 잊을 수가 없네....]
[전체/이구역진성탑러: 나를 좆바른 초롱아...]
[전체/여름매미: 그때 용호형이 초롱이 리폿13)넣었잖아.]

밴픽을 정하던 초롱이 흠칫 놀랐다. 리폿? 무슨 이유로?

[전체/이구역진성탑러: ? 뭔소리임?]
[전체/여름매미: 그거 너튭에 올라와있어ㅋㅋ존나 잘하는데 우리팀이 아닌게 아니꼬움이라며]
[전체/보니워니: 졸라 아니꼬웠나보다 무슨 그런 이유로 리폿?]
[전체/이구역진성탑러: 그걸 다 기억해? 님 스토커세요?]
[전체/봄봄봄봄: 저 형 나도 리폿 넣었음.]
[전체/봄봄봄봄: 세체탑을 위협해서 재수없단 이유로]

    예전에 ㅋㅌㅈ이 ㅍㅇㅋ 리폿했던 게 생각났다. 물론 리폿 이유는 한용호와는 정반대였지만…ㅋㅋ (ㅍㅇㅋ의 서포터 플레이를 금지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저만 보면 서포터로 자주 오는 걸로 보아 고의 트롤이 아닐까 의심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윤초롱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류성현이 말했다.
“내가 정현이 데려올 때 한 말이 있어. 오직 정현이한테만 했던 말이야.”
“…….”
“날 믿고 내 팀으로 와.”
“…….”
“그럼 널 세계 최고의 정글러로 만들어 줄게.”
확신으로 가득한 류성현의 눈동자를 윤초롱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류감독님 간지 미쳤다. 세체정으로 만들어준다는 그 발언. 감독이 저런 확신을 주면 어떤 선수가 오퍼를 마다할까.

 

“가끔 나한테 카톡도 와. 연락처 교환했거든.”
“어…….”
“아 참, 아몬드 알레르기 있다며. 땅콩이랑 호두는 되는데 아몬드는 안 된다는 말도 트리고가 해 줬어.”
헐… 제훈아…….
류성현은 자신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초롱을 바라보며 웃었다.
“좋은 친구더라.”
“네.”

    진짜 제훈이는 초롱이의 인생 최고의 친구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초롱이도 제훈이의 최고의 친구고. 친구를 그 어떤 팬보다 열렬히 덕질하면서 쉴드도 치고 악플러들도 시원하게 욕해주면서 키배도 떠주는 멘사 회원 Y대 의대생이라니. 이보다 완벽한 스펙의 친구는 없다.

 

“용호 똑땅해. 감독님 때문에 용호 똑땅해.”
갑자기 혀 짧은 소리를 하는 한용호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저래…….”
다행히 윤초롱뿐만이 아닌 듯했다. 어느새 일어났는지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온 서지호가 질색을 했지만 한용호가 말했다.
“부쨩해, 올해도 여친 없이 우리랑 지낼 감독님 부쨩해. 똑땅해.”
“빨리 씻어.”
“용호 마음도 몰라주고. 흥, 흥! 노총각 될 우리 감독님 부쨩.”
“야!”

    미쳐버린 한용호의 어그로. 노총각 얘기하는데 이전 ㅌㅇ감독인 ㄱㅈㄱ이 생각났다. 언제 결혼하냐고 했던 감독님도 어느새 결혼한 지가 꽤 됐네…

 

대기하던 최정현은 감독의 큐 사인과 함께 복도를 걸어갔다. 앞에서 걸어오는 정면 샷을 촬영한 다음에 측면 샷 그리고 마지막에 뒷모습을 찍었다. 좀 신기한 마음으로 모니터링 화면을 지켜보는데 뒷모습을 촬영할 때 감독이 [MASTER]란 닉네임이 잘 보이도록 앵글을 잡는 게 느껴졌다.
그다음에 최정현이 의자에 앉았다. 그것도 여러 시야로 찍은 다음 마지막 장면이 의자 정면 샷이었다. 거기서는 의견이 좀 갈렸다.

 

   

    이 장면은 LCK좀 본 사람이라면 다들 이 영상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간지 폭발 미쳐버렸던 우리ㅎ… 근데 다시 봐도 저 의자 연출은 미쳤다. 이게 벌써 7년 전이라고..? 말도 안 돼 내 시간...

 

최정현이 뭐라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크리스털이 깨졌다. <승리!>라는 메시지를 본 윤초롱이 방긋 웃었다. 두 번 연속 에이스 등극에 트리플 킬이라니……. 오늘은 운수가 좋다! 행복해하는데 딸그락 소리가 귀에 들렸다.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보니 최정현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마우스를 누르고 있었다.
“이걸 또 못 했네. 아쉽게.”

    프로게이머가 킬을 양보하다니. 이것은 찐 사랑일 수밖에 없다.

 

“초조해?”
“…….”
“걱정하지 마.”
“…….”
“내가 네 미드라이너인데.”

    이런 말을 하위권을 달리는 실력 없는 주장이 했으면 이새끼는 뭔데, 했겠지만 Master가 하니까 간지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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